이 책에서 '스크루테이프'는 악마이고 스크루테이프가 편지를 쓰는 대상인 '웜우드'는 스크루테이프의 조카이자 신참 악마입니다.
이 책에서 '환자'는 각각의 악마가 맡은 '사람'을 가리키고, '원수'는 그리스도입니다.
편지 6. 원수가 인간의 마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바리케이드를 치기에 불안과 걱정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원수는 인간들이 현재 하는 일에 신경을 쓰기 바라지만, 우리 임무는 장차 일어날 일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지. 원수가 의미하는 바는 뭐니 뭐니 해도 실제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을 인내로써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네 임무는 환자가 현재의 두려움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라는 생각을 절대 못 하게 하는 한편, 오로지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미래의 일들에만 줄창 매달려 있도록 조처하는 거다.
인간의 미덕들이 우리에게 치명상을 입히려면 반드시 의지의 원에 도달해서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하지(물론 내가 말하는 의지란 환자가 오해하는 것처럼 이런저런 결심을 해 놓고 이를 악물고 콧김을 뿜어가며 안달복달하는 게 아니라, 원수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진짜 중심을 가리킨다).
편지 7. 네가 경계해야 할 것은 환자가 현세의 일들을 원수에게 순종할 기회로 삼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세상을 목적으로 만들고 믿음을 수단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환자를 다 잡은 거나 마찬가지지. 세속적 명분이야 어떤 걸 추구하든지 상관없다. 집회, 팸플릿, 강령, 운동, 대의명분, 개혁운동 따위를 기도나 성례나 사랑보다 중요시하는 인간은 우리 밥이나 다름없어. '종교적'이 되면 될수록 (이런 조건에서는) 더 그렇지.
편지 8. 인간은 양서류다. 반은 영이고 반은 동물이지 (원수가 그렇게 역겨운 잡종을 창조하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은 우리 아버지께서 원수를 지지하지 않기로 하신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니까 인간은 영적 존재로써 영원한 세계에 속해 있는 한편, 동물로써 유한한 시간 안에 살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의 영혼은 영원한 대상을 향하고 있지만 그 육체와 정욕과 상상력은 시시각각 변한다는 게야. 시간 안에 있다는 건 곧 변한다는 뜻이니까. 따라서 인간이 불변성에 가장 가까이 가는 길은 바로 이 기복의 과정을 거치는 데 있다.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한, 인간은 육체적으로 풍성하고 활기차며 쉽게 감동하는 시기와 무감각하고 결핍된 시기를 번갈아 겪어야 한다. 원수가 인간 영혼 하나를 제 것으로 확보하기 위해 꼭대기보다 골짜기에 더 의존한다는 걸 알면 아마 좀 놀랄 게다. 원수가 특히 아끼는 인간들은 그 누구보다 길고도 깊은 골짜기를 통과해야 했다. 원수는 피조물들이 제 힘으로 서게 내버려 둔다. 흥미는 다 사라지고 의무만 남았을 때도 의지의 힘으로 감당해 낼 수 있게 하겠다는 속셈이지. 인간은 꼭대기에 있을 때 보다 이렇게 골짜기의 처박혀 있을 때 오히려 그 작자가 원하는 종류의 피조물로 자라 가는 게야. 그러니 이렇게 메마른 상태에서 올리는 기도야말로 원수를 가장 기쁘게 할 수밖에. 우리가 원하는 건 키워서 잡아먹을 가축이지만, 그 작자가 원하는 건 처음엔 종으로 불렀다가 결국 아들로 삼는 것이다. 우리는 빨아들이고 싶어 하지만 그는 내뿜고 싶어 하지. 우리는 비어있어 채워줘야 하지만 그는 충만해서 넘쳐흐른다.
편지 9. 인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운데 골짜기를 지나가는 시기에는 감각적 유혹, 특히나 성적 유혹이 매번 잘 먹혀든다. 착실한 술 주정뱅이를 만들려면, 행복하고 느긋한 기분으로 친구들과 즐기고 있을 때 술을 권하기보다는, 침체되고 지쳐 있을 때 일종의 진통제로 마시도록 밀어붙여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야. 어떤 쾌락이든 건전하고 정상적이며 충만한 형태로 취급하는 건, 어떤 점에서 원수를 유리하게 하는 짓임을 잊지 말거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 봤자 원수가 만든 쾌락들을 인간들이 즐기게 하되, 원수가 금지한 방식과 수준으로 즐기도록 유인하는 게 고작이지. 쾌락을 감소시키고 그에 대한 갈망은 증대시키는 게 우리가 쓰는 방식이야.... 처음 회심 했을 때 경험한 열정은 영원 무궁히 지속될 수 있는 것이고 영원히 지속되어야만 했다고, 지금 경험하고 있는 건조함 역시 그와 똑같이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라고 믿게 하라고. 이런 오해를 환자의 머릿속에 잘 고정만 시켜 놓으면, 그때부터는 다양하게 작전을 진행시킬 수가 있다. 환자에게 만사에 중용을 지키라고 말해 주거라. '종교는 지나치지 않아야 좋은 것'이라고 믿게만 해놓으면, 그의 영혼에 대해서는 마음 푹 놓아도 좋아. 중용을 지키는 종교란 우리한테 무교나 마찬가지니까. 아니, 무교보다 훨씬 더 즐겁지. 참과 거짓이라는 명백한 대립항을 생각지 못하게 하거라. '이건 그저 하나의 단계를 뿐이야', '나도 다 거쳐 왔지' 하는 식의 교묘하고도 아리송한 표현들을 잘 사용하도록 하고, '성장기'라는 복된 단어도 잊지 말고 써먹도록 해라.
편지 10. 너도 환자의 사회적, 성적, 지적 허영을 아주 잘 이용했던 모양이더구나. 환자가 아주 바람직한 친구들을 새로 사귄 데다가 너도 이 기회를 정말 믿음직하게 처리했다면서? 물론 새 친구들의 말에 깔려 있는 전제들이 자신의 신앙과 정면 배치 된다는 사실을 환자도 금세 깨닫게 되겠지. 하지만 그걸 드러내놓고 인정하는 사태만 지연시킬 수 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연되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환자는 자꾸 진심을 가장 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될 게다. 네가 잘 다루 기만 하면, 그런 태도들을 아예 환자의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인간은 자신이 가장 했던 대로 변하는 법이니까. 환자는 어떤 교제권에 속한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매번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게 될 게야. 이건 단지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데서 그치는 일이 아니다. 그는 정말로 매번 다른 다른 사람이 되는 거라구. 현대 기독교 서적 중에는 물신(物神)을 다룬 것들은 많은 반면 세속적 허영이라든가 친구를 선택하는 일, 시간의 중요성 따위에 대해서는 예전처럼 경고하는 책이 거의 없어. 이런 것들은 죄다 네 환자가 '청교도주의'라고 분류하는 범주에 들어가는 것들이지. 말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이 '청교도주의'라는 말에 부여한 가치야말로 지난 100년 사이에 우리가 얻어낸 확실한 승리가 아니겠느냐? 이 말 한마디로 해마다 수천 명 씩을 절제와 순결과 건전한 생활에서 구출하고 있으니 말이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편지 1~5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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